"조기상환 포기" 선언한 롯데손해보험, 후순위채 투자자들 긴장 타는 이유
최근 보험업계를 중심으로 불거진 후순위채 조기상환 이슈가 금융투자시장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중심에 선 곳은 롯데손해보험이다. 2019년 발행한 1,000억 원 규모의 후순위채에 대해 시장은 ‘5년 콜옵션 행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정작 회사는 이를 조기상환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투자자들은 혼란에 빠졌고, 금융당국은 사태의 여파를 주시하고 있다.
후순위채, ‘콜옵션’은 당연한 수순일까?
후순위채란 회사가 부실화될 경우 일반채권자보다 변제 순위가 낮은 채권이다. 대신 높은 금리를 제공하고, 자본성 자산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보험사나 은행이 자본 확충용으로 자주 발행한다. 특히 보험사들은 ‘신지급여력제도(K-ICS)’ 도입에 맞춰 자본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후순위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그런데 이 후순위채엔 흔히 '콜옵션(조기상환 권리)'이 붙는다. 발행 후 일정 기간(보통 5년)이 지나면 발행사가 상환할 수 있는 권리다. 이 콜옵션이 "의무"는 아니지만, 시장은 대체로 "상환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투자한다. 왜냐하면 콜옵션이 행사되지 않을 경우, 해당 채권은 자본으로서의 인정 비중이 해마다 줄어들고, 시장 신뢰에도 금이 가기 때문이다.
롯데손보의 결정, 왜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나?
롯데손해보험은 2019년 6월, 연 5.9% 금리로 1,000억 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이 채권의 콜옵션 시점은 2024년 6월이다. 시장은 이 채권이 예정대로 6월에 조기상환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롯데손보는 지난 4월 중순 전격적으로 ‘조기상환 불가’를 통보했다.
이 결정은 몇 가지 맥락에서 나왔다. 우선 금리 환경 변화다. 2019년 발행 당시보다 기준금리와 시장금리가 크게 올라 신규 자금 조달 금리가 7%대를 넘나든다. 즉, 같은 규모를 상환하고 다시 발행하려면 더 비싼 금리를 물어야 하는 상황. 롯데손보 입장에선 기존 채권을 유지하는 편이 자금비용 측면에서 유리하다.
또 하나는 재무적 여유다. 롯데손보는 2023년 회계연도 기준 RBC비율(지급여력 비율)이 200% 초반에 머물고 있다. 당국 기준(100%)보다 높지만, K-ICS 시행을 앞둔 보험업계에선 여전히 보수적으로 자본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콜옵션 행사로 자본인정액이 줄어들 경우, 재무건전성 지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투자자들의 불만, 왜 커지는가
문제는 ‘시장 관행’과 ‘신뢰’다. 그간 대다수 금융사들은 콜옵션 시점에 맞춰 조기상환을 단행해 왔다. 투자자들도 이를 기정사실화했고, 따라서 롯데손보 채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믿었다. 특히 이 채권을 보유한 연기금, 보험사, 개인투자자 중 상당수가 만기까지 들고 있지 않고, 중도 매매를 고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조기상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채권 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기대했던 수익률 계산이 틀어지고, 시장 유동성도 떨어진다. 더 큰 문제는 '이제 다른 보험사들도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신이 번지는 것이다. 이른바 ‘도미노 리스크’다. 실제로 하나손보, 흥국화재 등 일부 보험사 후순위채도 콜옵션 행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감독당국과 시장, 다음 수는?
금융감독원은 롯데손보의 결정이 "계약상 불법은 아니나,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시장 신뢰를 깨는 결정이 장기적으로 금융사에도 악영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 것이다. 당국은 향후 후순위채 발행 시 ‘콜옵션 행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투자자 고지 강화’ 등을 제도적으로 정비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이번 롯데손보 사태는 "법적 문제는 없지만, 시장 신뢰는 흔들렸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금리가 높은 현 시점에서 후순위채의 조기상환 여부는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는 이슈다. 투자자라면 이제 “콜옵션이 행사되는지” 여부를 단순한 추정이 아닌 리스크 요인으로 적극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